기대감소의 시대. 바라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보다, 잃을 것 같은 무언가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 사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의 저서 제목입니다. 1997년 출간된 이 책을 20여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나라의 존립을 구걸하던 그 시기에 나온 책을…. 폴 크루그먼은 경제문제의 근본 원인을 △생산성 둔화 △소득분배 불균형 △실업 3가지로 지목합니다. 그런데, 심란합니다. 20여년 전의 진단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들의 핵심 단면을 도려낸 듯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토록 팍팍한 이유도 말입니다.

장한형 시니어신문 발행인

글 _ 장한형 시니어신문 발행인.대표

최근 OECD가 내놓은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18시간이나 됐다. 52시간 시간 근무제가 확산하면서, 줄어들기는 했다. 2000~2007년 부동의 1위를 차지하다 2008년에서야 멕시코에 자리를 넘겨줬다.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332시간)을 비롯해 덴마크(1346시간), 영국(1367시간), 노르웨이(1369시간), 네덜란드(1399시간) 등과 비교하면 여전히 지독한 일벌레. 그런데,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100달러 기준)41.7달러에 그쳤다. 1위는 아일랜드(111.8달러)로 노동생산성이 우리나라의 약 3배였고, 룩셈부르크(96.7달러)ㆍ노르웨이(85.5달러)ㆍ덴마크(75.4달러)ㆍ미국(74.3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동유럽 국가인 슬로바키아(45.8달러), 슬로베니아(45.7달러), 체코(42.1달러) 등도 우리나라를 앞섰다.

이러한 수치 앞에서 한국인의 자랑이던 근면‧성실의 미덕은 부질없는 자부심이다. 폴 크루그먼이 강조한 생산성에서 일단 낙제점이다.

소득분배 불균형으로 인한 양극화는 어떤가. 2017년 우리나라 최상위 10% 집단의 소득 비중은 50.6%로 전체 계층 소득의 절반 이상을 10% 계층이 가져갔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리고 실업. 날개를 펴보지도 못한 채 파닥거리며 길거리 라이더로 몰리는 청년들, 눈물을 머금고 지옥 같은 자영업시장으로 떨어지는 시니어의 고통과 시련이 현재의 고용환경을 너무도 극명하게 대변한다. 굳이 구체적인 수치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폴 크루그먼이 20여년 전 지목한 「기대감소의 시대」는 오늘날 한국에서 묘한 데자뷰로 나타나고 있다.

생산성 제자리, 소득불균형만 늘어

폴 크루그먼은 소득불평등의 심화는 국가 전체의 복지수준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전셋값이 평균 3000만원 뛰었다고 했을 때, 매달 1억원을 버는 집은 눈 하나 끔뻑이지 않는다. 그러나, 매달 200만원을 버는 집에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1년 넘게 모아야 하는 돈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얼마나 부유한지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리고 소득분배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빈부격차가 작은 사회일수록 살기 좋은 곳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소득분배보다 생산성이 경제적 복지에 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상위 10%에 속하는 부유층은 생산성 증가가 아닌, 소득분배의 불평등 덕분에 부의 증가를 누린다. 원인이 무엇이든 소득불균형을 해결하고, 기대감소의 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지난 10년 간 나타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개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실업률이 높을수록 국가경제에 손실이다. 높은 실업률은 만성 빈곤층을 확대한다. 국가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사회건전성을 유지하는 열쇠다. 젊은이들이 졸업 후 의심의 여지없이 취업해 오랫동안 일하면서 일정한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취업을 하늘의 별따기처럼 여기는 사회보다 분명 살기 좋은 곳이다.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일자리가 풍부한 사회가 부족한 사회보다 살기 좋은 곳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새벽별보기운동 강요하는가?

폴 크루그먼도 유념하며 강조한 요소도 생산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의 생활수준뿐만 아니라 국력의 우위 역시 생산성에 따라 갈리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생활수준이 2배로 뛴 것이나 1950년 이후 일본 생활수준이 10배로 높아진 것은 생산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국가경제의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은 생산요소 투입량을 증가시키거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방법이 있다. 1990년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생산성 증가 없이 생산요소 투입량을 늘려 이룬 성과에 불과하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미명 아래 장기간 노동을 군말 없이 감내했다. 이제는 생산요소 투입량을 아무리 늘려도 성장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아직도 새벽 별보기 운동과 같은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OECD 최장근로시간을 자랑하면서도 1인당 생산성이나 국민소득, 생활수준은 서유럽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경제, 20년전 미국 닮은꼴

설상가상, 폴 크루그먼의 데자뷰를 적용하자면 경제위기가 시작되리라는 조심스런 진단도 내려진다. 미국의 금리인하, 중국 경제의 거품이 꺼지는 탓만은 아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경제지표보다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불균형의 정도가 너무도 심각하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만성적인 생산성 둔화와 소득분배 악화를 겪으면서 중산층의 실질소득이 정체되고, 빈민층의 수도 급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5년 동안 미국은 부유층과 노동계급의 소득격차가 작았고 절대다수가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소득격차가 확대됐고, 1980년대 초 레이건의 감세정책이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했다는 것이 폴 크루그먼의 진단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면 놀랍도록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대규모 감세정책을 펴고 있다.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으니 세수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부메랑은 고스란히 중산층을 덮쳐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애꿎은 베이비붐세대, 마지막 복병?

한 가지 복병이 더 남았다. 애꿎은 베이비붐세대다.

폴 크루그먼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져올 위기상황을 경고했다.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경제의 원인을 1990년대 시작된 단카이(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서 찾는 전문가는 부지기수다. 이처럼 대규모 인구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는 것.

2000년대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주택가격이 급등한 구조적 원인도 베이비붐 세대가 50대에 접어들며 급증한 주택수요에서 찾기도 한다. 이제 이들의 은퇴를 앞두고 주택수요가 감소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상식에 가깝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초래될 재정적자 급증과 세금부담, 뒤이어 국민연금과 노인의료비 증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고스란히 노인을 부양해야 할 젊은이들의 몫으로 남겨지기 때문에 또 다른 계층의 불행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폴 크루그먼은 생산성과 소득분배, 고용만 해결하면 오늘날 겪는 대부분의 경제문제는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국민의 열성적인 요구와 정치권의 과감한 결단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 순응하는 국민과 정치적 출혈을 꺼리는 정치인들의 성향 때문에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 폴 크루그먼의 우려였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기대감소의 시대도 그저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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